「임진록」의 영웅상에 대한 고찰 (최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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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2-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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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도교적 수련인 조선단학의 理論가로 손꼽혔으며 그가 임종할 때는 홀연히 풍수와 번개가 일어나고 자기를 뻗치더니 갑자기 죽었다하여 신선과 같은 이인의 면모를 보인다.
「임진록」의영웅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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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16·7세기경 조선에 도교사상이 떨쳤던 점에 주목하여 임진록에 나타난 인물들의 도교적인 측면을 살펴 임진왜란의 시기에 도교사상의 발달이 어떻게 대응되었는지,인물들의 이인적 면모를 보여주는 이인설화와 그 이본에는 어떤 모습으로 수용되었는지에 대해 작성한 글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임심의 무상함을 느끼고 다시 은거생활로 돌아가 생을 마치었다.
곽재우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글의 내용이 선조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파면을 당하였다. 이러한 곽재우의 생애야말로 동양적인 이인설화의 모습을 연상케함에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다.
사명당은 수도의 길을 걷는 승려라는 독특한 신분으로 활약하였고, 그의 수도자다운 인품이 적을 위압하여 그들을 설득시킨 역활에서, 도승으로서의 영웅적 행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인설화가 항간에 많이 퍼져나갔다. 모반이라고하는 관군의 저항을 무릅쓰고 자기의 가재를 털어 의병을 모집하고 동지를 규합하여 싸운 사실로 인하여 영웅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동양에서의 영웅상은 은일(隱逸)의 수도자가 영웅으로 변신하는 특이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명당도 그러한 유형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아
참고로, 우리나라는 본래 도관(道觀)이 따로 없고 도교적인 의례가 없었던 만큼 도사들이 산수간에 노닐면서 사찰에서 수련하는 경우가 많았고 승려들중에는 공행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내공의 수련법을 행하는 자가 적지 않았으므로 승려와 도사 사이에 …(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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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세기경 조선에 도교사상이 떨쳤던 점에 주목하여 임진록에 나타난 인물들의 도교적인 측면을 살펴 임진왜란의 시기에 도교사상의 발달이 어떻게 대응되었는지,인물들의 이인적 면모를 보여주는 이인설화와 그 이본에는 어떤 모습으로 수용되었는지에 대해 작성한 글입니다. 그 후 과거를 포기하고 초야에 묻혀 은거생활을 하였는데, 전란이 일어나자 감연히 나섰고, 싸움에서 많은 공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결코 자기에게로 돌리지 않았다.
다.
4) 신술도승 사명당
산승의 신분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군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해 승리의 개가를 올렸던 사명당은 정유재란(제2차 임진왜란)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임지왜란이 끝나자 임금의 명으로 日本(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그들의 화의를 정탐하고 그들의 뜻이 화친에 있음을 파악하여 임진왜란의 뒷수습을 마무리하는데 큰공적을 남겼던 인물이다.
곽재우는 임진란 초기에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사람이다.「임진록」의영웅상에 , 「임진록」의 영웅상에 대한 고찰 (최삼룡)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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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의 영웅상에 대한 고찰 (최삼룡)
16·7세기경 조선에 도교사상이 떨쳤던 점에 주목하여 「임진록」에 나타난 인물들의 도교적인 측면을 살펴 임진왜란의 시기에 도교사상의 발달이 어떻게 대응되었는가, 인물들의 이인적 면모를 보여주는 이인설화와 그 이본에는 어떤 모습으로 수용되었는가를 고찰하려고 한다.